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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 수학 과학

🌀무한은 어디까지인가 – 칸토어와 힐베르트 호텔

by 나무눈 2025. 4. 16.

🌀 무한은 어디까지인가 – 칸토어와 힐베르트 호텔

도입: 수를 아무리 세도 끝이 없다? 무한이란 뭘까?

우리는 어릴 때부터 숫자를 셌다. 하나, 둘, 셋... 백, 천, 만...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. ‘이 숫자는 끝이 있을까?’ 어른이 되어서도 이 질문은 수학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. 그리고 이 질문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, 수학의 깊은 심연인 **‘무한(∞)’**으로 이어진다.

하지만 무한은 단순히 ‘아주 큰 수’를 의미하지 않는다. 무한은 수학자들에게는 오히려 논리의 대상, 즉 엄밀히 정의되고 탐구되어야 할 개념이다. 이 글에서는 무한이 가진 크기의 차이, 칸토어의 무한 이론, 그리고 힐베르트 호텔이라는 기묘한 역설을 통해 우리가 ‘무한’에 대해 얼마나 잘못 생각해왔는지를 돌아보려 한다.


🔢 가산 무한 vs. 비가산 무한 – 무한에도 '크기'가 있다?

무한은 ‘끝이 없음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, 사실 무한은 종류가 나뉜다.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무한조차 서로 다른 크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. 이 충격적인 개념은 19세기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(Georg Cantor) 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.

예를 들어, 자연수 집합 {1, 2, 3, 4, ...} 는 무한하다. 하지만 짝수의 집합 {2, 4, 6, 8, ...} 도 무한하지 않은가? 얼핏 보면 짝수는 자연수의 일부이니 더 작아 보여야 할 것 같지만, 놀랍게도 짝수와 자연수는 1:1로 짝지을 수 있다.

자연수 1 ↔ 짝수 2
자연수 2 ↔ 짝수 4
자연수 3 ↔ 짝수 6
...

이렇게 대응시킬 수 있으면, 두 집합의 원소 수는 ‘같다’고 본다. 이처럼 ‘1:1 대응이 가능한 무한 집합’을 우리는 가산 무한(countable infinity) 이라고 부른다. 가산 무한에는 자연수, 짝수, 정수, 유리수가 포함된다.

그런데 실수(real numbers) 는 다르다. 실수는 단순히 ‘무한히 많다’는 수준이 아니라, 자연수로는 절대 다 셀 수 없는 무한함이다. 칸토어는 이를 ‘비가산 무한(uncountable infinity)’이라고 정의하고, 이를 증명하기 위해 ‘대각선 논법’이라는 유명한 논리를 고안했다.

이 개념은 단순한 수 개념을 넘어서, 무한에도 위계가 존재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드러낸다. 무한은 단지 끝없는 수열이 아닌, 서로 다른 '크기의 무한들'로 나뉠 수 있는 수학적 객체인 것이다.


♾️ 칸토어의 집합론 – 무한의 크기를 정량화한 사람

게오르크 칸토어는 무한을 체계적으로 탐구한 최초의 수학자다. 그는 무한 집합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‘기수(cardinal number)’라는 개념을 도입했다.

  • 자연수 집합의 크기는 ℵ₀(알레프 제로)
  • 실수 집합의 크기는 2^ℵ₀

즉, 실수는 자연수보다 ‘더 큰 무한’을 가진다. 이건 단순히 직관적인 크기 비교가 아니라, 집합의 원소들을 어떻게 대응시킬 수 있는가에 따라 수학적으로 정의된 무한의 크기다.

칸토어의 이론은 당시 수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. 심지어 어떤 철학자와 수학자는 칸토어를 비난하며 그의 이론을 '신성모독'이라고까지 했다. 그만큼 ‘무한의 비교’는 기존 수학의 틀을 부수는 개념적 전환이었다.


🏨 힐베르트 호텔 역설 – 무한은 정말 이상하다

이제 무한의 기묘함을 한층 더 체감할 수 있는 예를 보자. 바로 힐베르트 호텔(Hilbert's Hotel) 이다. 이는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가 고안한 사고 실험으로, 무한의 패러독스를 흥미롭게 설명한다.

이 상상의 호텔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:

  • 방은 1번, 2번, 3번, ... 식으로 무한히 많다.
  • 모든 방이 이미 투숙객으로 꽉 차 있다.
  • 그런데 새 손님이 1명 더 왔다면?

현실이라면 ‘죄송합니다, 자리가 없습니다’가 맞겠지만, 힐베르트 호텔은 다르다. 현재 방에 있는 손님들에게 n번 방 → n+1번 방으로 모두 이동하라고 하면 된다. 그러면 1번 방이 비게 되며, 새 손님이 들어갈 수 있다!

그렇다면 무한히 많은 손님이 동시에 온다면?

그 경우, 현재 손님들에게 n번 방 → 2n번 방으로 이동시키면 된다. 그러면 모든 홀수 방이 비게 되어, 새 손님들을 1, 3, 5, 7... 번 방에 배치할 수 있다.

이 역설은 무한의 세계에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. 무한한 공간은 이미 가득 찼더라도, 새로운 무한을 받아들일 수 있다. 이처럼 무한은 끝없이 포용할 수 있는 개념이며,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논리 세계를 형성한다.


🧠 무한은 ‘끝없는 크기’가 아니라, ‘논리적 존재’다

무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‘무한은 너무 커서 다룰 수 없다’고 여긴다. 그러나 수학자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.

"무한은 너무 커서가 아니라, 너무 논리적이라 우리가 직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."

무한은 단순히 ‘계속 커지는 수’가 아니라, 논리적으로 정의된 대상이다.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도, 수학의 세계에서는 엄밀한 규칙과 증명을 통해 다뤄질 수 있는 개념이다.

우리가 자연수를 셀 수 있는 것처럼, 무한도 구조화하고 분류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. 칸토어는 무한의 크기를 수로 표현했고, 힐베르트는 무한의 역설적 성질을 비유로 표현했다. 이들의 노력은 무한을 철학에서 수학으로 끌어낸, 위대한 지적 도전이었다.


🔍 결론: 무한,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거울

무한은 단순히 ‘끝이 없는 크기’가 아니다. 그것은 우리가 논리와 수학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하나의 구조이며, 끝없는 수열도, 셀 수 없는 연속체도 모두 서로 다른 무한의 얼굴이다.

이 글에서 우리는:

  • 무한의 가산/비가산 개념을 이해했고
  • 칸토어의 집합론을 통해 무한의 크기를 비교해봤으며
  • 힐베르트 호텔을 통해 무한의 역설적 성질을 체험했다.

이처럼 무한은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, 수학적 사고를 깊이 있게 확장시키는 철학적 거울이다.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‘끝없는’ 것들도, 실제로는 수학의 눈으로 재정의될 수 있는 대상일지 모른다.

결국 무한이란 개념은 우주의 크기만큼이나, 우리 내면의 인식의 확장을 자극하는 존재다.